잠기고, 불타고… ‘물불’ 안 가리는 기후 재앙
로도스섬 산불 번져 3만 명 대피
인도서 폭우·산사태… 80여명 실종
캐나다도 50년 만에 가장 많은 비
G20 화석연료 감축 합의는 불발
극한 기후가 유발한 자연재해 피해는 이제 세계 각지에서 ‘일상적 풍경’이 됐다. 지난 주말에도 그리스에서 이상고온에 따른 산불이 번져 관광객 등 수만 명이 대피하는 사태가 빚어졌고, 인도와 캐나다에선 폭우로 산이 무너지거나 도시가 침수돼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구 전역을 덮친 기후위기 앞에 ‘안전 지대’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22일 CNN방송 등에 따르면, 그리스 동남부 휴양지 로도스섬에선 산불 때문에 주민과 관광객 등 약 3만 명이 긴급 대피했다. 섬 중부와 남부 일대를 휩쓴 불이 방향이 바뀐 바람을 타고 몇 ㎞ 바깥의 관광 지구까지 번져나간 탓이다.
실제로 현지 상황은 꽤 심각하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고, 일부 도로는 불 때문에 접근이 막혔다. 수천 명이 캐리어를 끌고 도보로 이동하면서 긴 피난 행렬도 이어졌다. 해안 경비대와 민간 선박들도 불을 피해 해변에 몰린 관광객들을 섬 북부로 실어 날랐다. 마을의회 관계자는 “이 섬에서 전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8일 로도스섬과 아테네 서부 등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닷새째 그리스의 숲을 태우고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까지 나서 진화를 돕고 있으나 불길은 도통 잡히지 않는다. 시민보호청은 수도 아테네 등 13개 지역에 산불 적색경보를 내렸다.
설상가상인 건 섭씨 40도를 넘는 이상고온이 11일째 이어진다는 점이다. 수풀이 메말라 불이 옮겨붙기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코스타스 라구바르도스 아테네 국립기상연구소장은 “이번 폭염은 15, 16일, 혹은 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역대 최장 기록인 12일 연속(1987년)이 깨질 수도 있다. 그리스에서는 화재가 흔하지만 몇 년간 기후변화 영향으로 더 ‘고온건조’해진 결과, 피해가 늘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인도는 폭우 및 산사태 피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현지 매체 ‘타임스 오브 인디아’ 등은 지난 주말에만 최소 27명이 숨지고 80명 이상이 실종된 사실이 추가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19일 밤 서부 마하라슈트라주(州)를 덮친 산사태로 주택 17채가 매몰된 결과다. 게다가 계속 내리는 비로 구조 장비를 동원할 수 없어 진흙을 직접 손으로 파내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의 7월은 통상적인 우기에 속하지만 지구온난화 때문에 극단적 기상이 더 자주, 더 심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지난달 우기가 시작된 이후 인도 전역에서 도로 함몰, 주택 붕괴 등으로 6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캐나다도 52년 만에 가장 많은 비가 내려 수해 피해가 컸다. 동부 노바스코샤주 당국은 어린이 2명 등 4명이 실종됐고, 7만 명이 정전 피해를 겪었다고 밝혔다. 홍수로 도로와 다리가 유실된 것은 물론, 건물 침수 피해도 잇따랐다. 로이터통신은 “전날부터 하루 동안 250㎜ 이상의 폭우가 쏟아졌고, 이는 이 지역의 3개월치 강수량”이라고 전했다.
전 세계에 극한 기후 비상령이 떨어졌음에도, 주요 20개국(G20)의 화석연료 감축 논의는 ‘빈손’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라지 쿠마르 싱 인도 전력부 장관은 “일부 국가들은 화석연료의 단계적 감축 대신 산소 포집(화석 연료 사용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저장) 방식을 사용하길 바랐다”며 합의가 사실상 불발됐음을 알렸다. 영국 가디언은 “G20 회원국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4분의 3 이상을 차지한다”면서 이들이 기후 재앙 대응을 주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