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호 칼럼-언약의 후계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간 자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주는 의미
이삭의 일대기에서 하나님의 섭리속에 이루어 지는 깊은 뜻을 상고 하고자 한다. 이삭의 이름 뜻은 웃음이다. 그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25년 전부터 불임의 부모에게서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출생 했다. 그의 출생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결실이었다. 그는 바다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약속의 자손의 첫 열매가 되었고 첫 계약의 상속자가 되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요, 어머니 사라는 90세 때 출생했다. 100세의 얻은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었고, 아브라함에게는 생명보다 더 귀한 독자였으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여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했고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묶고 단 위에 놓아 제물로 죽이고자 ?다. 그 때에 이삭은 반항도 않고, 그저 침묵으로 순종한 것이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때 이삭이 적어도 25세는 되었을 것이라 했고, 또 다른 학자들은 33세쯤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삭은 충분히 결박을 풀고 반항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나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 순종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에서 때로는 불도 준비되었고 나무도 준비 되었지만, 번제할 어린 양이 없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생각된다. 교회가 조직도 있고 일할 계획도 있으나 그러나 누가 하나님께 바쳐질 제물이 되느냐가 문제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번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다. 계획도 더구나 아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자(롬12:10). 이삭이 40세 때 리브가를 만나 결혼하여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으니 20년 세월동안 자식이 없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첩의 소생인 이스마엘은 벌써 12형제를 두었고 12방백을 이뤘지만,(창25:16) 그런 상황에서 그의 인내와 간구는 실로 20여년의 간구한 오랜 기도였다. 오늘의 신앙의 사람들도 조급한 마음보다 인내가 필요함을 잊지 말자.
이삭이 20년의 간구 끝에 태중에 두 민족이 나누이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기한이 차 에서와 야곱을 낳게 되고 장성하였을 때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겨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고 이로 인하여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지 못하는 한 많은 비극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 두 형제의 비극은 부모의 편애가 빚은 가정불화의 한 단면인 것이다.
이삭이 남긴 신앙의 발자취에서 창26장에 보면 일곱 번에 걸쳐 우물을 팠다고 한 것은 원수들의 시기와 싸움을 피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우물을 넘겨주고 새로운 샘물을 하나님께로부터 얻게 했고, 결국 적들은 무릎을 끓고 사죄를 했을 때 오히려 이삭은 그들을 맞아 잔치까지 베풀었다(창26:30).
이삭은 족장들 중 어떤 사람보다 짧고 단순하여 폄범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순종의 태도와 묵상의 신앙과 화목의 삶은 구속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리스도의 예표하는 “씨”로서 믿음의 삶을 살았던 사람임을 택함받은 성도들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는 육적으로는 부정모혈로 태어났기에 부모님께 효도하고 영적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